운명은 존재하는가

운명은 보통 이미 정해진 길을 뜻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누군가의 삶은 하나의 시나리오처럼 완성되어 있고, 우리는 그 위를 따라 걷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이 개념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을 위로해 왔다. 이해할 수 없는 불행 앞에서 “그럴 운명이었어”라고 말하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잠시나마 질서를 얻는다. 하지만 운명을 믿는다는 것은 동시에 묘한 무력감을 동반한다. 이미 정해진 결말이 있다면, 선택과 노력, 후회와 다짐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리가 밤을 새워 고민하고, 잘못된 선택을 되돌아보며 괴로워하는 이유는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연출에 불과한 걸까. 과학의 언어로 보면 운명은 더욱 흐릿해진다. 유전, 환경, 우연한 사건들이 겹겹이 쌓여 한 사람의 삶을 만든다. 이는 ‘정해진 운명’이라기보다, 수많은 변수들이 순간순간 결과를 만들어내는 확률의 흐름에 가깝다. 같은 출발선에 서 있어도, 작은 차이 하나가 전혀 다른 삶으로 이어진다. 이때 운명은 계획이 아니라, 결과를 나중에 붙이는 이름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운명을 떠올린다. 우연히 만난 사람, 뜻밖의 기회, 피할 수 없었던 이별 앞에서 우리는 말한다. “이건 운명이었어.” 사실 그 말 속에는 설명보다는 감정이 담겨 있다. 이해하고 싶고, 받아들이고 싶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다. 운명은 사실이기보다, 의미를 만들기 위한 언어에 가깝다. 어쩌면 운명은 존재하지 않지만, 운명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은 분명 존재한다.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인간에게, 그 무게는 때로 너무 크다. 그때 우리는 선택을 운명으로 바꾼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질문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운명이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왜 운명을 필요로 하는가. 그 답은 단순하다. 삶은 우연으로만 설명하기엔 너무 불안정하고, 선택만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운명은 그 틈을 메워주는 이야기다. 결국 운명은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만들어진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말할 때, 비로소 운명은 모습을 갖는다. 그것은 정해진 미래가 아니라, 받아들인 과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운명은 우리를 묶는 족쇄가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하는 해석일지도 모른다.
